2013년12월 공지사항
지금까지 제가 뛸 듯이 기뻤던 날들 중 첫 번째는 제가 대학 입시에 합격한 날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이 저와 결혼해주겠다고 확실하게 약속한 날이었고, 세 번째는 제가 배운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날, 네 번째는 제가 번역한 <클러리사 할로>(Clarissa Harlowe)가 세상에 나온 날, 그리고 다섯 번째는 유영학술재단 유혁수 이사장님께서 제가 제7회 유영 번역상을 받게 되었다고 알려주신 날이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심장이 좀 약해져서 그런지 모르지만 저는 그 전화를 받고 가슴이 몹시 뛰기 시작해서 두어 시간 지나서야 겨우 진정되었습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니 어쩌면 그 날이 저의 가장 기뻤던 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오래 동안 읽고 가르친 이 작품을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도 알릴 수 있도록 인정을 받았으니 그래도 제 일생이 헛되지는 않았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호사다마라더니 저는 상을 받는 것은 좋지만 수상소감을 써야 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만은 좀 면했으면 싶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제가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함께 읽은 새무얼 존슨(Samuel Johnson)의 글이었습니다. 연설할 때 몹시 겁먹는 사람에게 한 충고인데 <램블러>(The Rambler) 159호에 있습니다. 연설자가 사람들 앞에 설 때 겁을 먹는 이유는 자기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듣는 사람의 머리에 영원히 남고, 그것으로 자신의 명예와 불명예가 좌우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길에서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인파 중에 우리가 눈여겨보는 사람이 별로 없듯이, 우리도 인파에 섞여 지나갈 때, 우연히 어떤 사람이 우리를 쳐다보는 일은 있지만, 그 시선은 곧 우리 뒤에 오는 사람을 향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그러므로 겁이 나거든 연설하는 잠간 동안을 아무 말로나 채우고, 그 말이 듣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곧 잊히기를 바라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용기를 얻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번역한 책보다 더 좋은 작품을 더 잘 번역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영예를 받게 되었으니 송구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저는 그분들이 제 번역을 수상작으로 결정해주신 것이, 제가 번역을 잘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번역한 것을 다시 읽어보면 어휘 선택이나 표현이나 문장 등 고치고 싶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모든 문장을 시를 다듬듯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 손질하면 개선될 것 같지만 저에게는 이제 그럴 시간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다듬어도 저의 글은 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일 뿐, 능력의 한계는 넘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작품 내용이나 제대로 읽고 정확히 옮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완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으니 차후에 어느 분이 더 정확하고 좋을 글로 새 번역판을 내셨으면 합니다.
<클러리사>는 1748년에 나온 제1판과 이듬해에 나온 제2판을 작가가 직접 철저히 수정하고 대폭 보완해서 1753년에 낸 제3판을 기본으로 번역한 것입니다. 원본으로 2899쪽이며 여덟 권의 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읽어보지 않은 저의 친구들은 그 작품에 도대체 무엇이 쓰였기에 그렇게 기냐고 자주 묻습니다. 저는 길게 설명하면 힘들기 때문에, “양가의 한 처녀가 난봉꾼의 꾐에 빠져 가출하고 그 남자에게 겁탈당하고 분해서 죽는 이야기”라고 간단히 대답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분해서 죽다니, 웃기는 얘기로군” 합니다. 여주인공의 상대역 남자는 출중한 미모에다 재산과 지능을 겸비한 상류층 쾌남으로, 여주인공 스스로도 그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남자는 없다고 합니다. 결말에 가서 남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서 그녀와 결혼하겠다고 하고, 그것으로 자신이 입힌 피해를 보상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주인공의 마음은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앓다가 죽는 이야기이므로 이런 설정은 강의실의 대부분 학생들도 이해하기 힘든, “웃기는 얘기”입니다.
그런 논평을 들을 때마다 저는 항상 답답한 마음으로, 모든 예술 창작의 기본 원리는 상징성이라는 진부한 설명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에게 처녀성은 신체의 어떤 물리적 상태가 아니라 한 인간이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게 하는 모든 것이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 그 자체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타인이 강제로 빼앗고 훼손할 때, 그것은 한 인간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모욕과 유린 행위를 눈감고 타협하면서 물리적 생명을 부지하는 삶을 택하는 것은 자아를 스스로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행위임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면 그 당시 그 사회 사람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도 견딜 수 없는 일로 느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여주인공은 물리적 약자이지만 그가 남자의 완력을 이기는 것은 정신적 강자의 승리로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지나친 이상주의로 생각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물질주의로 기울어진 현재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해독제라고 했습니다.
제가 이 상을 받게 된 것이 심사위원들께서 저의 글 솜씨가 아니라 리처드슨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신 때문이라면 저는 크게 다행으로 여기며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작품이 어찌 그렇게 기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제 생각을 한마디로 좀 과장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긴 작품의 모든 페이지를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읽었고, 실제로 참지 못해 흑흑 느끼며 눈물을 흘린 적도 있습니다. 모든 가치 있는 예술 작품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것이 불변의 진리라면, 이 여주인공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 투철한 신념, 불의와 맞서는 용기, 곧은 양심, 자아를 지키려는 강한 의지는 요즘의 어떤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매우 유익한 거울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모든 가치 있는 작품이 그렇듯이 이 작품도 정치, 경제, 종교, 풍속 등 당시 영국 문화의 모든 것을 그림처럼 생생하게 담고 있는데 그것은 본질적으로 오늘 우리의 모든 것과 꼭 같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작품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 대학 1학년 때 배동호(裵東虎) 선생님의 영어 단편 소설 강의를 들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브렛 하트(Bret Harte)의 “로링 캠프의 행운아(The Luck of Roaring Camp)”를 강독하시면서 작품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보고 어쩌면 저렇게 좋아하실 수가 있나 감탄하면서, 선생님이 부러웠습니다. 선생님은 영어 독해력을 기르려면 외국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 작품을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1년 동안 그런 책들을 읽고 2학년 여름 방학 직전에 선생님을 뵙고, 방학 동안에 영국 소설을 읽고 싶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헨리 필딩(Henry Fielding)의 <조지프 앤드루스>(Joseph Andrews)를 빌려주셨습니다. 그 작품은 오늘날 좋은 주석판을 보면서도 읽기 쉽지 않은데 선생님이 빌려주신 책은 주석도 전혀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영어 독해력도 크게 부족한데도, 생전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작품을, 당시 소공동에 있던 국립중앙도서관에 매일 가서,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여름 방학 내내 땀을 흘리며 읽었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께 그 책을 다 읽었다고 말씀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든 그때 그 작품을 읽은 것 때문에 저는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의 <패멀라>(Pamela)라는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 책을 구해 읽었고, 그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 그와 연관된 영국 소설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서 저는 진로를 걱정하지 않고 주저 없이 대학원을 갔고,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천만 다행으로 제가 배운 곳에서 이 소설과 18세기 다른 작품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러다가 지금부터 10년 전에 정년으로 퇴임했습니다. 퇴임 1년 전부터 저는 시간이 좀 생겨서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면서 이 작품을 번역하기 시작해서 지난해에 책이 나왔습니다.
잘 알려졌듯이 이 작품은 전체가 인물들이 주고받는 편지의 연속입니다. 이 수법은 사소한 사실 하나를 다루는 데도 편지마다 머리말과 맺음말이 있어야 하는 등 복잡한 과정이 필수이기 때문에 매우 거추장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엄격히 말하면 헨리 제임스(Henry James)가 이상으로 여기는, 화자가 제거된 스토리텔링입니다. 모든 이야기가 인물들의 관점과 의식과 언어로만 전해지기 때문에 독자는 화자의 개입 없이 인물의 행동과 심리를 직접 보고 듣는 형식입니다. 주인공이 폐쇄된 공간,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자기가 가진 소중한 모든 것을 빼앗기고, 인권을 유린당하고 공포와 불안과 분노와 고독을 느끼며 혈혈단신으로 온 세상의 불의와 처절한 싸움을 벌일 때, 독자는 여주인공이 고군분투하면서 당하는 모든 시련과 갈등을 목격하면서 여주인공과 같은 모든 감정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편지 수법만이 이 작품의 가치를 전적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전부라면 극단적으로 말해서, 편지 형식으로만 쓰면 모든 소설이 리처드슨의 소설과 같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리처드슨이 <클러리사> 다음에 같은 형식으로 쓴 <찰스 그랜디슨 경>(Sir Charles Grandison)이 <클러리사>와 같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그 좋은 예입니다. 또 다른 예는 이 소설을 모방한 프랑스나 독일의 서간체 소설들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서간체 소설 수법에 있어서 리처드슨을 따를 작가가 없다는 것은 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작가가 어떤 수법으로 쓰든, 같은 주제를 가지고 쓴다면 작품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작가의 역량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리처드슨이 3인칭 전지작가의 수법으로 그의 작품을 썼더라도 효과는 같았을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제가 이번 말고 상을 받은 것은 55년 전 대학 1학년 때였습니다. 노천극장에서 있었던 2학기 개강 예배 시간에 뜻밖에도 제가 영문과 우등상장과 장학금을 받은 것입니다. 그때 상금이 당시 한 학기 등록금 정도 되었는데 저는 다행히 2학기 등록금을 부모님이 마련해주셔서 이미 납부한 후였습니다. 저는 상금으로 무엇을 할까 망설이지 않고 그 돈을 다 들여 중고 영문 타자기 한 대를 샀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영어 소설을 읽고 나면 요약과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그 타자기로 쳐서 쪽지를 모았습니다. 지금 읽어보면 너무도 유치하지요. 하여튼 그 타자기는 20년 가까이 쓰다가 컴퓨터가 나와서 그만 썼습니다만,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제가 그 돈은 잘 썼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저에게 주시는 이 귀한 상금을 뜻있게 쓰고 싶습니다. 그 방법은 유영 선생님의 뜻을 기리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25 피난 시절에 제가 용인중학교 1학년에 다닐 때, 민중서관 영한사전을 부산에서 시골로 우송해 주신 저의 아버님께 감사드립니다. 배동호 선생님과, 제가 모교에서 가르치도록 큰 도움을 주신 이상섭 선생님,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시는 김태성, 이정 선배님과 저의 동창생들과 지금 현직에서 가르치는 후배 교수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 많은 작품을 선별하시느라 수고하신 심사위원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그분들이 후회하시지 않도록 남은 동안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부피가 큰 책을 출판해주신 지만지의 박영률 사장님과 편집진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유영학술재단과 이사장님과 유영 선생님의 모든 자녀분들의 높으신 뜻을 치하하며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학부와 대학원에서 저희를 가르쳐주신 유영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선생님의 업적이 오래오래 기억되고 좋은 씨앗이 풍성한 결실을 맺을 것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약력>
김성균은 1939년 서울에서 출생하고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 영문과에서 1964년, 66년, 79년에 각각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석사학위 논문은 <그레엄 그린의 종교적 방법>, 박사학위 논문은 <Tristram Shandy 연구: 작가의 독자 의식과 작품의 구성>이다. 1971년부터 연세대학교 교양학부 영어과 강사로 가르쳤고, 1980년에 영문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1982년에는 하버드 옌칭의 객원 교수 프로그램으로 하버드대에서 자료 수집과 연구를 하고 돌아와 학부와 대학원에서 18세기, 19세기 영소설을 강의하다가 2004년 2월에 명예교수로 정년퇴임했다. 재임하는 동안 주로 영국 발생기 소설에 관한 논문을 썼고, 학부 강의용 주해서로 Defoe의 Moll Flanders(신아사, 1991), Richardson의 Pamela (연세대 출판부, 1996), Fielding의 Joseph Andrews (연세대 출판부, 1995)와 학부 영산문 강독용으로 주석본 Prose in English(연세대 출판부, 1998)를 편집했다. 역서는 Graham Greene의 <명예영사(The Honorary Counsel)>(한길사, 198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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