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번역상 수상소감
제 19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하게 된 것을 크나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번역상의 지속적 운영을 위하여 노고를 아끼지 않으시는 유영학술재단의 유혁수 이사장님과 다른 관계자 분들, 그리고 심사위원장님을 비롯한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재주가 별로 없는 저는 사실 학교를 졸업한 후론 상이란 걸 탄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데, 노년에 이렇게 번역상을 타게 되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수생활을 할 적에도 번역을 몇 번 한 일이 있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느라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상을 받은 작품을 번역할 때에는 한가한 은퇴생활 속에서 일거리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성심을 다해 번역했습니다. 교정쇄를 받은 후에도 오류를 시정하기 위해 한달 이상 퇴고하는데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노력이 결실을 거둔 걸까요? 그러나 저의 한국말 구사력이 유려하지 못한 것을 항상 아쉬워하던 저는 사실 이런 수상을 감히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이 책을 출판해 주신 문학동네에서 참고하라고 보내주신 번역서의 매끄럽고도 자연스런 한국말 표현을 보면서, 과연 나도 이렇게 해낼 수 있을까 가늠해 보았던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700여 페이지가 넘는 그리 쉽지 않은 작품을 번역해 낸 수고를 인정해서 상을 주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무엇보다도 96세에 노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니 나영균 교수님-본인도 여러 권의 번역서를 내신 번역가이도 하신--께 이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이 소식을 들으시고 어머니는 명치유신 이후 일본인들이 번역에 기울였던 지대한 노력에 대하여, 그리고 식자층 뿐 아니라 서민층에게까지 유포되어 있는 일본인들의 독서습관과 문화향유의 태도에 대하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또한 일본작가 나츠메 소세키가 영문학도로서 약간의 번역도 하였는데, 아주 유려한 일본말을 구사했으며, 부드러운 구어체의 일본말을 처음으로 문학에서 사용하여 일본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70이 넘은 나이이지만, 이런 아름다운 완성의 길에 도달하기 위햐여 다시 노력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기억력이 많이 사라지신 96세의 노모가 오늘 아침 무엇을 드셨는지는 기억 못하시지만, 제게 이런 말씀을 해 주실 수 있는 것을 보고 인간 정신의 오묘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영문학 작품을 여러권 번역하신 어머니가 자연스럽게 저의 번역의 스승이셨던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간결하고 담담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문체로 글을 쓰셨습니다.
오늘 저의 친지들이 많이 오셨는데, 그 가운데에는 중요한 번역을 수행하셨거나, 하시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경희대 근무시절의 동료였던 김언종 교수님은 한문의 대가로서 현재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역시 경희대 시절 동료였으며, 전직 경희대 부총장이었던 김한상 교수는 번역을 하지는 않았지만, 스페인 국왕 내한시 통역을 맡았던 유능한 통역가이자 언어학자입니다. 이화여대 동료였던 정덕애, 최주리 교수님은 이화학당의 초대 당장이셨던 선교사 룰루 프라이 선생님의 친필 서신을 판독하는 각고의 노력 끝에 이것을 한국어로 번역하여 [정동의 봄]이라는 책을 작년에 출간하셔서 중요한 역사기록을 살려내는데 공헌하셨습니다. 역시 이화여대 동료였던 송기정 교수는 발자크의 전작을 완역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저의 가족 중에는 사촌동생의 아들인 김준서 군이 한국의 게임이나 문화콘텐츠를 번역하는 프리랜서 번역가입니다. 한번도 외국에서 교육을 받은 일이 없는데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실력자입니다.
또한 저의 책 [험볼트의 선물]을 번역하는 동안, 전 과정을 저와 함께 해주셨던 문학동네의 김혜정 수석편집실장님과, 문학동네의 공동대표이신 김소영, 이현자 대표님들, 그리고 송지선 편집국 해외2팀 부장님이 이자리에 와 계십니다. 모두들 저에게 번역의 가치에 대한 확신을 주셨고, 번역작업을 도와주신 분들입니다.
또한 연로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돌봐드리고 있는 동생 전송미 대표와 제부 신창무 고문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연로하신 어머니가 안정되고 편안한 생활을 하고 계시다는 것도, 번역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자리에 와있는 재능이 차고 넘치는 사촌들 또한 생동감 있는 분위기로 저를 자극합니다. 또한분 내촌목공소의 김민식 고문님은 [나무의 시간]이라는 나무와 재목에 대한 수필로 산림청 문학상에서 대통령 상을 수상하신 분입니다. 첫 작품으로 호기롭게 대통령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방대한 독서량과 예측하지 못할 방향으로 분방하게 뻗어가는 상상력을 가진 독특한 수필가입니다. 역시 글에 대한 사랑을 키워주신 동지 중의 한 분이십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끌어오다 보니, 번역처럼 고독해 보이는 작업도 결국은 관계의 얽힘 속에서 생겨나는 산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오늘밤 축하의 자리를 만들어 주시고, 채워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유영번역상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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