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손 저손 거쳐 한알의 나락이
땅의 품에서 마침내 썩고 말자
처절한 생명의 싸움은 시작되었지
봄눈에 시달리며 가냘픈 싹은
얼마나 몸살을 앓았던가
울어대고 몸부림치고 떨면서
태양의 입술을 빨고저 잎은 바람에 춤추고
땅의 젖줄을 웅켜잡고저
뿌리는 무더위에도 파내리기에 지쳤지
젊은이 땀방울 늙은이 한숨 아낙네 손길
물에 섞어 거름에 섞어 세월에 섞어
칵테일로 마시고 또 마셔 취하고 흥겨웠지
드디어 불어난 결실로 대지도 비좁게
벼이삭은 일제히 밀집 사열로 가을을 축복하였지
황금보다 더 귀한 황금 물결을 일구며
압력에 굴해서가 아니라 하늘이 고마워
공손히 머리 숙여 신고하자
땅도 만족해 잠이 오는데 공짜 새들의 극성만 요란할 뿐
유영 시집 『마음은 날개』1992, 푸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