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맞으면
비를 맞으면
체념의 채찍에 기절했던
오늘의 생명이 숨을 쉰다
물미는 어둠에 쫓겨
무위(無爲)의 굴종에 갇혔던
어제의 의식이 날개를 편다
비정(非情)에 밟혀
노래를 잃었던
풀들이 춤을 추고
잎 뒤 그늘에서
갈망만 되새기던 청개구리도
사랑을 느끼는 순간
지나는 추녀 밑에서 나 참새처럼
비를 피하며 비로소
세계며 인생이란 역설(逆說)을 더듬는다
비는 상처입은 조국의 정맥을 거두어
바다의 심장을 거쳐 꿈의 구름, 말 없는 동맥으로
겨레의 공해를 정화하는 것
내일 또 우연히 비를 맞으면
나 어느 추녀 밑에서
한 마리 참새 되어 허망의 번개에 쫓기며
역겨운 하늘을 원망할 것인가
유영 제2시집 『천지서』1975, 중앙출판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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